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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지주회사 전환의 전제조건

최근 삼성전자가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엘리엇의 네 가지 요구사항에 대한 삼성의 첫 공식 반응이다. 이로써 내년 3월 정기주총을 대비한 양측의 수읽기 싸움의 첫 번째 카드들이 드러났다. 이후 국내외 주주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 전쟁이 진행될 것이며, 엘리엇의 맥시멈 공격 카드와 삼성의 미니멈 방어 카드 사이에서 모종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주총 표 대결이 벌어질 것이다.

삼성의 발표 내용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삼성이 그나마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정책뿐이었는데, 30조원의 특별배당 요구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나름 성의표시는 했다. 나머지 세 가지에 대해 삼성이 어떻게 얼버무릴 것인가가 나의 관전 포인트였다. 나스닥 상장 요구에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그러려니 하지만, 사외이사 세 자리 요구에 대한 삼성의 대답은 요령부득이다. “글로벌 기업 경험을 가진 이사 한 명 추천과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 신설”이 다였다. 사외이사의 독립성 여부는 ‘그 사람이 누구냐’가 아니라 ‘누가 추천했느냐’에 의해 좌우된다. (엘리엇을 포함한) 외부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받아들이겠다는 게 아니라면 별 의미가 없다. 독립성 없는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작년 합병 이후 삼성물산에 거버넌스위원회가 설치되었지만, 최순실의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마도 내년 삼성전자 주총에서는 사외이사 선임이 첫 격전장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세간의 관심은 엘리엇의 첫 번째 요구사항, 즉 ‘삼성전자 인적분할 및 지주회사 전환’ 여부에 모아졌다. 삼성은 ‘향후 6개월 동안 지주회사 전환을 포함한 기업의 최적구조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국내외 언론들은 삼성이 조만간 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시작할 것처럼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물론 지주회사 전환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는 사실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삼성의 이날 발표는 “지주회사 전환? 하고는 싶지만 당분간은 어렵다”는 속내를 보인 것으로 봐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먼저 지주회사 전환의 핵심 지렛대인 자사주 이용을 막는 법안이 대거 국회에 상정되어 있기 때문에, 국회 통과 전에 삼성이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이런 언론보도를 볼 때마다 나는 기자들이 국회의 입법 현실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여소야대 국회라고 야당 마음대로 법을 만드는 게 아니다. 국회 본회의는 단순 과반 의결이지만, 상임위에서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60%의 찬성이 필요하고, 그 전 단계인 법안심사소위는 사실상 만장일치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아예 심의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여야 간에 주고받기식 패키지딜이 이루어져야만 겨우 법안이 통과되는 것이다. 아무리 새누리당이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자사주 이용 금지 법안들이 바로 입법될 거라고 전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삼성이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대 명분을 없애고 법안 통과를 재촉하는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삼성의 현 출자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유일한 탈출구는 지주회사 전환이다. 그러나 하고 싶다고 금방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건 삼성도 알고, 엘리엇도 안다. 삼성전자의 일반지주회사 전환, (그 이전에 진행해야 할)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이 두 작업의 관건으로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일부 매각, 그리고 두 지주회사의 합병을 통한 최종지주회사 설립 등은 삼성물산 합병 이상의 논란거리를 안고 있는 난제들이다. 그 장기 로드맵을 그리는 작업을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핵심 멤버들이 국정조사 받고, 특검수사 받고, 나아가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향후 6개월 동안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탄핵이든 하야든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면 그 이후 누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극도의 정치적 불확실성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은 경영판단의 문제만도 아니며, 법률 해석 차원에서 가부를 따질 문제만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와 시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사안이다. 삼성이 자초한 일이다. 따라서 삼성과 이 부회장이 더 이상 한국사회의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지주회사 전환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그걸 깨닫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2월 6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