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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마주한 특검의 고민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예정 시점을 두 차례나 연기하면서 장고를 거듭한 결정이다. 이유는 두 가지리라. 우선, 삼성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 즉 ‘삼성이 흔들리면 나라가 어렵다’는 협박 내지 애국심 마케팅 앞에서 주저하지 않을 만큼 강심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돌이켜 보라. 2005년 X파일 사건 때, 2007년 김용철 변호사 양심고백 사건 때, 그리고 2015년 엘리엇 사태 때도 우리 사회는 삼성에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이라고 다를 건가? 특검이 언명한 대로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고통스럽겠지만, 그것이 진정 삼성을 위한 길이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를 애국심 운운하는 ‘우리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편, 순수 법리적인 측면에서 특검이 고민했던 것은 나도 이해가 된다. 정리해보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우리는 삼성과 관련된 두 개의 팩트를 알고 있다. 삼성의 로비와 청와대 경제수석 등의 압력으로 인해 국민연금이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는 것이 그 하나요, 삼성물산 합병 주총 이후 삼성이 최순실 일가에 거액을 상납했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일반인의 법감정 차원에서 이 두 팩트는 당연히 인과관계로 연결되고, 따라서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더구나 특검이 매일매일의 브리핑을 통해 언론에 흘린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보면 그림이 너무 커졌다. 2014년 9월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독대한 것을 시작으로, 2015년 1월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승마협회 회장에 취임한 것을 거쳐, 2015년 7월 삼성물산 합병과 2015년 8월 이후의 상납으로 귀결되기까지의 모든 일들이 마치 하나의 잘 기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이르렀다. 과연 특검이 영장 판사와 형사법원 판사 앞에서 이 시나리오 전체를 입증할 만큼의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을까? 잘 모르겠다.

이 시나리오에는 인과관계가 잘 연결되지 않는 고리가 하나 있다. 엘리엇이 등장한 것은 2015년 6월이다. 물론 (구)삼성물산은 내부지분율이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합병 주총에서의 특별결의(참석 주식 수의 3분의 2 이상 찬성)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넘기지 않고 투자위원회에서 독단적으로 찬성 결정을 하도록 로비·압박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몰릴 거라고 예견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엘리엇의 등장 이전까지는. 따라서 엘리엇 등장 이전의 대통령 독대와 승마협회 회장 취임을 그 이후 국민연금의 잘못된 행동으로 바로 연결하는 것은 아무래도 매끄럽지가 않다. 특검의 분발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난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삼성의 뇌물죄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확신한다. 다만 그 확신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전제되어 있다. 첫째, 삼성이 최순실에게 로비를 했다면, 그 목적이 단지 삼성물산 합병 성사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삼성물산 합병은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이벤트였지만, 그것으로 승계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하는 현재의 그룹 출자구조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합병보다 더 어려운 작업, 즉 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엘리엇 등장 이전에 삼성이 비선 실세를 포착하고 로비를 한 것은 바로 이것까지를 포함한 더 큰 목적을 위해서다.

둘째, 재벌 총수와 그 비공식 참모조직은 수직적 주종관계로서 일사불란한 의사결정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특히 지금의 삼성처럼 승계가 진행되는 과도기에는 이들의 인센티브가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왕세자가 등극하면 선왕의 가신들은 모두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신들도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비선 실세에 로비할 강한 유인을 갖게 된다. 천하의 삼성 미래전략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것이 로비의 목적과 경로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 기소 여부, 유죄판결 여부를 놓고 올해 내내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이 부회장에게는 더없는 시련의 시간이겠지만, 자신을 변화시키고 삼성을 근원적으로 혁신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애국심 마케팅으로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다면, 그 마지막 기회마저 날릴 것이다. 이 부회장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월 17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