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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이 버려야 할 것들

“성공은 자만을 낳고, 자만은 실패를 낳는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앤디 그로브의 책 <승자의 법칙>(원제 )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이 문구가 오늘날 삼성이 처한 위기의 원인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삼성이 놀라운 성공을 이룬 것은 맞지만, 과거의 성공 방식에 집착하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실패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회장의 영도, 미래전략실의 기획, 전문경영인의 실행.’ 삼성 스스로 설명하는 ‘성공의 삼각축’이다. 빠른 추격자 시절에는 확실히 강점이 있는 조직 모델이다. 특히 미래전략실의 역할이 핵심이다. 미래전략실이 모든 정보를 보고받아 치밀한 기획안을 마련한 다음, 회장의 지시라는 권위를 입히고, 각 계열사에서 일사불란하게 집행하는 시스템이 이른바 ‘관리의 삼성’이라는 신화를 만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의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체제’가 그 정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만큼의 권위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이건희 회장도 27년의 재임 중 그룹의 전략적 경영판단을 주도한 기간은 극히 짧았고, ‘은둔의 제왕’이라는 권위 역시 미래전략실이 만든 신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성공의 요인이었지만 지금은 실패의 원인이 된 것도 결국은 미래전략실이다.

기업집단에서 다수 계열사들의 사업활동을 조정하는 컨트롤타워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미래전략실이 삼성의 컨트롤타워인데, 문제는 법적 실체가 없는 조직이라는 데 있다. 권한은 막강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다. 더구나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으니 환경 변화에 둔감해지고, 성공의 결과 그룹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미래전략실에 집중된 정보가 부족하고 부정확하게 된다. 그러니 무리수를 두게 되고 심지어는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갤럭시 노트7 참사와 삼성물산 합병 논란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미래전략실의 오작동이다.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미래전략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총수일가의 지배권 유지 및 승계라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만으로는 턱도 없는 일이니, 온갖 꼼수를 찾아낼 수밖에 없고, 그 뒷수습을 위해 온갖 요로에 로비를 할 수밖에 없다. 그 일을 하는 곳이 미래전략실이다. 단적인 예로,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으로부터 시작된 일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거쳐 2015년 삼성물산 합병으로까지 이어졌다. 20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미래전략실이 일관되게 추진한 일이 바로 이재용 부회장에게 안정된 지분 지배력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더 어려운 작업이 남았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조급한 마음에 최순실을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암초에 걸린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미래전략실을 주축으로 하는 ‘관리의 삼성’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경영권 위협을 느끼지 않을 안정된 지분을 만들어줄 테니, 그때까지는 시키는 대로 하라’는 미래전략실의 낡은 방식에 계속 의존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미래는 없다.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하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부회장 자신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된 지분’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이 변했다. 작년 12월 청문회에서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지분으로 지배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겠다. 열심히 노력해서 시장의 평가를 받도록 하겠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더 능력 있는 분을 모시겠다.” 이 말을 믿을 수 있게 그룹의 조직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안 그러면, 결국 감옥에 갈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각 계열사 차원에서는 ‘이사회 순혈주의’를 버려야 한다. 작년 11월 말 삼성전자 이사회는 ‘글로벌 기업 CEO 경험을 가진 분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 뭐하는가? 아무리 훌륭한 인사라도 내부 경영진이 선임한 사외이사는 독립성을 가질 수 없다. 엘리엇이든, 국민연금이든 외부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걸 경영권 위협이라고 생각하면 출구가 없다.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 자신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 모든 걸 보고받고 모든 걸 직접 결정하는 ‘CEO형 총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미 늦었다.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하고, 내부 구성원을 통합하고 외부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마저도 제대로 못하면, 배당받는 주주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진부한 말이지만, 버려야 산다.


* 이 글은 경향신문 2월 7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