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칼럼과 소식 > 경제읽기






‘이기적 유전자’ 제12장의 교훈

“착한 놈이 일등 한다(Nice guys finish first).”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의 제12장 제목이다. 1976년 초판에는 없던 장인데, 1989년 개정판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작년에 글을 쓰면서 인용할 부분이 있어 뒤적거리다가, 12장 전체를 다시 읽게 되었다. 새삼 감탄했다. ‘죄수의 딜레마’의 의미와 그 극복 전략을 어떤 경제학자보다도 더 잘 설명해놓았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경제학개론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는 ‘게임 이론’의 기초다. 요약하면, 검찰이 두 명의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①별개의 취조실에 격리시켜 놓고, ②‘너만 자백하면 너만 풀어 줄게’라고 제안하는 경우를 묘사한 것이다.

결과는?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며칠 구류 살고 나올 뿐인데, 둘 다 자백하고 둘 다 몇 년씩 감옥에서 썩게 된다. 왜 이런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걸까? 게임의 구조에 그 답이 있다. ①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묵비권을 행사하자’라는 협력의 약속을 할 수 없다. 소통의 부재다. 또한 ②자백(배신)이라는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얻는다. 보상구조의 왜곡이다.

생각해보라. 한국 사회 전체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지 않은가!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영남과 호남, 어르신과 청년,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등등으로 온 나라가 쪼개져 있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데,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나아가 상대 진영의 비판보다도 같은 진영 내의 비난이 더 두렵다. 파문당하면 끝이다. 그러니 진영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고, 합의를 이루기도 어렵지만, 합의를 깰 때 상대방의 보복보다 같은 편에서 받는 보상이 훨씬 크다. 그 결과 배신이 난무하고, 모두가 불행해진다.

이런 죄수의 딜레마, 진영논리의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기적 유전자>의 제12장이 제시한 답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전략이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유래한 이 경구는 매우 잔인한 원칙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다. 사적 처벌이 횡행하던 고대 사회에서 ‘상대방이 네 눈을 다치게 했으면, 너도 그의 눈만 상하게 하라’는 식으로 과잉보복을 금지한 합리적 규칙이다.

나아가 도킨스는 이를 ‘착한 전략’으로 재해석한다. 상대방이 배신할 때는 보복하지만 내가 먼저 배신하는 일은 없으며(nice), 배신했던 상대방이 반성하고 협력 행동으로 돌아오면 바로 용서해주고(forgiving), 이 전략을 취할 때 내가 얻는 이득은 상대방보다 크지 않지만 이를 시샘하지 않는다(not envious)는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 과연 이런 전략으로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의심되지만,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놀랍게도 이 착한 전략의 승률이 가장 높게 나왔다. 다만 언제나 승리하는 건 아니다. 착한 전략의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도킨스는 강조한다.

첫째, 이 전략을 오랜 기간 동안 일관되게 반복 구사해야 한다. 한 번에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개헌, 대연정, 경제민주화 등등의 거대 이슈들이 뜨겁게 논의되고 있다.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 되면, 다른 사소한 이슈들은…’이라는 빅뱅식 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본다. ‘협력에는 보상, 배신에는 벌칙’이라는 단순한 원칙을 체화하는 오랜 진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조급증을 버리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그 전략을 따르는 사람의 비중이 일정 임계치를 넘어야 한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진영논리로는 그 임계치를 넘어설 수 없고, 죄수의 딜레마로 퇴화하는 실패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국민도 변해야 한다. 진영논리를 대변하는 대통령을 뽑아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비판 세력은 더욱 강고해지고, 지지 세력도 조만간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칙적 최선보다는 현실적 차선의 선택이 필요하다. 국민은 ‘가짜뉴스’만 믿지 말고 인내심을 키워야 한다.

국내외 경제환경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압력에 대응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국내 소비 및 투자 동향은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만큼이나 침체되어 있다. 정말로 어렵다. 협력의 장기적 이익은 더욱 불확실해지고, 배신의 단기적 유혹은 더욱 커졌다. 조기 대선으로 출범할 ‘준비 안된 대통령’ 역시 실패할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기적 유전자> 제12장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정치적 메시아도 없다. 대통령의 일관성과 국민의 인내심, 우리 모두의 현명함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 이 글은 경향신문 3월 7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