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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재계의 여론몰이에 흔들리지 말고 상법 개정안 처리해야
재계의‘외국인은 한통속’ 주장, 경영권 위협 부풀리는 구태 못 벗어나
상법 개정은 시장친화적 개혁, 사전규제와 형사처벌 위주의 현행 틀 개선하는 효과
지난 대선에서 모든 정당이 공약했던 내용, 국회는 국민과의 약속 지켜야

1.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재계는 상법 개정 저지를 위한 로비와 반대여론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전경련 산하 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련)이 전경련을 대신하여 재벌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듯하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경연을 비롯한 재계가 경영권 위협을 부풀리는 여론조작을 통해 상법 개정을 무산시키려 시도하는 것을 규탄하며, 여야 정당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

2. 한경연은 지난 13일「상법개정안, 해외투기자본 빗장 풀리나… 得보다 失」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면서 “민주당이 제기한 상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경제민주화 달성보다는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14일에는「감사위원․집중투표제 도입 시 이사회 구성 주요 기업의 시뮬레이션 보고서」를 통해,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10대 기업 중 4개 기업에서 외국계 투자기관이 선호하는 이사 한 명이 무조건 이사회에 진출할 수 있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방식이 도입되면 10대 기업 중 6개 기업에서 외국계 투자기관이 감사위원을 싹쓸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주1).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 ‘기업사냥꾼’ 등 자극적인 용어로 애국주의를 자극하여 합리적인 논의가 불가능한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한경연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비현실적인 가정과 아전인수식 논리로 채워져 있다.

먼저, 집중투표제와 관련해서 보면, 이사의 임기가 3년이고 대부분 회사에서 시차임기제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다 해도 외부주주가 원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 2015.4 기준 재벌(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회사들의 이사 수는 평균 6.3명이다(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정보포털). 집중투표제를 도입할 경우, 선임할 이사 수가 2명인 회사에서 외부주주가 이사 1명을 선임하기 위해 필요한 지분은 33.3%다. 선임할 이사 수가 3명일 경우 필요지분은 25%, 4명일 경우 20%로 낮아지지만, 시차임기제로 인해 한 해에 선임할 이사 수는 2~3명, 삼성전자(이사 9명)와 같은 대형 상장회사도 많아야 3~4명이다. 이사 1명을 선임하는 데 최소 20%가 넘는 지분이 필요한데, 이만한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의 경우에는 의결권 제한 방식(이른바 3%룰)을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시뮬레이션 보고서에서 한경연은 모든 개별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안(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출 시 적용되는 현행 규정)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데(주2), 이 방식에 따르면 최대주주 측 개인과 계열사들이 각각 3%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므로 최대주주 측이 2인 이상이고 지분합계가 3%에서 1주만 초과해도 외부주주와의 의결권 대결에서 이길 수 있게 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방식이 도입되어도 3%룰을 이렇게 적용하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경제개혁연대는 모든 주주의 의결권을 특수관계인과 합하여 3%로 제한함으로써 특정 주주가 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며, 채이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개정안이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경연이 주장하는 경영권 위협 가능성은 모든 외국인 주주들이 연합한다는 ‘가정’이 성립할 때에만 문제가 될 수 있다. 10대 기업 중 6개 기업에서 감사위원이 싹쓸이된다는 시뮬레이션 역시 이러한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인데, 투자 목적이나 투자 패턴이 각기 다른 외국인 주주들이 연합하여 단일하게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가정은 현실성이 전혀 없다. 외국인 주주 대부분은 경영참여에 소극적이고 경영진이 제출한 주주총회 안건에 반대하는 일도 찾아보기 어렵다. 2015년 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여 의결권대리행사권유(표 대결)를 한 것이 예외적인 사례인데, 당시 외국인 주주 지분은 33% 수준이고 일성신약 등 국내 주주를 제외하고 합병에 반대한 외국인 지분은 22~23%로 추정된다. 직접적인 재산상 이익이 걸린 사안임에도 ‘외국인 투자자 대연합’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하물며 특정 주주가 추천한 이사를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외국인 주주들이 찬성하고 표를 몰아주는 일은 더더욱 일어나기 어렵다.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통한 이사회 진출은 외국인 주주 지분율이 높은 회사에서가 아니라 지배주주의 전횡이 심해 경영진 감시의 필요성이 높은 회사에서, 전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후보를 추천한 경우에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외부주주가 추천한 이사가 운 좋게 이사회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이를 곧바로 경영권 위협으로 연결시키는 것 역시 무리한 주장이다. 시차임기를 적용하면 한 해에 감사위원을 전부 선임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고, 주주들이 몇 년에 걸쳐 공동행동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부주주는 기껏해야 이사 한 두 명을 선임할 수 있을 뿐이다. 한 두 명의 이사로 어떻게 이사회를 장악한다는 말인가. 경영권 위협은커녕 총수일가와 경영진의 부당 행위를 감시하고 막아내는 일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경연이 유일한 사례로 드는 2006년 KT&G의 칼아이칸의 경우도 경영권을 위협한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주3).

3. 한경연은 객관적인 사실조차 왜곡하고 있다. 13일 자료에서 한경연은 민주당의 상법개정안이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과 합하여 3%로 제한하는 반면 다른 주주들은 개별 주주별로 3%로 제한하기 때문에 외국계 투기자본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사를 다수 선임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민주당안(김종인 의원 대표발의)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도입하되 3%룰은 현행을 유지하는 것으로,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 선임 시에는 최대주주만 그 특수관계인과 합하여 3%까지로 의결권이 제한되고 다른 주주들은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는다. 반면,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임 시에는 최대주주 뿐만 아니라 다른 주주들도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특수관계인 지분은 합하지 않고 개별 주주 단위로 계산하므로 최대주주 측도 각 주주가 3%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내이사⋅사외이사를 불문하고 모든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만 특수관계인을 합하여 3%로 제한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경영권 위협을 과장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경제개혁연대는 사내⋅사외 감사위원을 구별하여 3%룰을 차등 적용하는 현행 상법 규정의 문제점을 감안하여 이를 보완하는 대안을 낸 바 있고 국회에도 이를 반영한 개정안(채이배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되어 있는데, 한경연은 의도적으로 민주당안만 가지고, 그것도 잘못된 해석으로 문제를 과장하고 있다.

현행 상법상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하는 안건을 주주총회에서 의결할 때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므로 사실상 집중투표제를 강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도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이 규정이 도입된 것은 이미 대부분 기업들이 정관 개정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하고 난 뒤의 일이고, 집중투표제가 사문화되었다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아무 의미 없는 조항을 끼워 넣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4. “회사법(상법) 개정은 재계와 사회의 합의 내용을 재작성하는 것과 같다.”(Goddard, 2003; rewriting the settlement between business and society)는 말이 있다. 촛불집회에서 우리 사회가 재계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총수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에 재계가 반대할 명분은 더 이상 없다. 고질적인 정경유착이 여전히 재벌의 생존 방식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도 재계는 스스로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믿어 달라고 하는데, 상법 개정은 기업의 자율 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도입하는 것이다. 상법을 통한 시장친화적 규율이 작동하지 않으면 사전 행정규제나 사후 형사처벌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기업에는 더 나쁜 환경이라는 점을 재계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재계가 ‘상법 개정의 모든 사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근시안적 태도’에서 조속히 탈피하기를 촉구한다.

5. 최근 논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은 우리사주조합 추천 사외이사 선임 등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이 공약한 사항이고 법무부 개정안으로 입법예고까지 되었던 내용이다. 그러나 2013년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오찬을 가진 직후부터 박근혜 정부에서 상법 개정은 실종되었고, 상법 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은 19대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최순실게이트로 재벌 개혁에 대한 요구가 분출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다시 상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만약 이번 임시국회에서 또 다시 상법 개정이 불발로 끝난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당이 탄핵과 조기 대선 국면에서 재벌개혁 여론에 얹혀가기 위해 상법 개정 이슈를 활용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20대 국회가 재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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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고서 원문은 공개되지 않은 관계로 언론 기사에 소개된 내용에 근거하였다.
2) 언론 기사로는 지분율 데이터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 없고, 2016.9 분기보고서상 지분율이나 2015.12 사업보고서상 지분율과 비교할 때 수치가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으나 대체로 유사하여 이같이 추정한다. 또한, 한경연이 사용한 외국계 투자기관의 지분율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3) 이에 대해서는 2013.10.29 경제개혁이슈「재계의 상법 개정안 반대논리에 대한 비판적 검토」참조


논평 원문(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