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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합병무효소송 1심 판결 논리의 문제점
재판부, 삼성물산 합병은 정당한 목적이 있고 승계의 필요성도 전제하고 있어
이재용 뇌물죄 사건 등 관련재판 내용 외면, 기존 판례와 배치되는 판단도 발견

1. 지난주(10/19) 서울중앙지법은 일성신약 등 원고들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무효의 건에 대해 원고 패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경제개혁연대(소장 :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하나, 삼성물산 합병이 무효가 아니라는 결론을 별론으로 하고 이에 이르는 과정에서 재판부가 제시한 논리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 첫째, 재판부는 합병목적이 부당하지 않다고 전제하고 있다. 즉, 합병이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 하더라도 경영상의 합목적성이 있었으므로 경영권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며, 따라서 합병목적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쟁의 행위 등과 마찬가지로 회사법에서도 목적의 부당성은 주된 목적이론을 따르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인데, 재판부가 경영권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면 부당하지 않다는 식의 판단을 내리고 있어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제3자에 대한 신주발행이 경영권 방어가 주된 목적이라면 신주발행 전체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이번 삼성물산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라는 것은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합병목적의 부당성을 인정해야하는데 단지 경영상의 합목적성이 부수적으로 일부 있다는 이유로 이를 부인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더 나아가 재판부는 그룹의 승계 및 경영권 안정이 삼성그룹 및 각 계열사의 이익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근거도 없을 뿐더러 이재용 또는 지배주주일가와 삼성그룹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대변하여 재판부가 삼성물산 합병무효소송의 논점을 일탈한 것이다.

둘째,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여부에 대해 소극적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에 대해 “이 사건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령에 기하여 산정된 것”이라며, 합병비율이 구 삼성물산 및 그 주주들에게 불리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또 합병비율이 일부 구 삼성물산 및 그 주주들에게 불리하였더라도 이를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부분은 서울고등법원이 일성신약 및 소액주주들이 청구한 주식매수청구 가격 결정에 대한 판례에서 합병비율이 부당하다고 이미 확인한 바 있다(정확히는 합병 결의 직전 주가의 공정성). 따라서 재판부는 합병비율 결정의 근거,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 산정시기 및 당시 시장상황 등을 면밀히 파악하여 그 적정성 여부를 판단했어야 하나, 단지 자본시장법령을 준수했다는 이유만으로 합병비율이 부당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가 상급법원의 판단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이를 간과하고 법령 뒤에 숨은 것이다.
한편, 이 부분 판단은 합병 비율이 구 삼성물산 및 그 주주에게 불리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 재판부가 합병비율이 공정하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밝혀둔다.

셋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합병 무효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재판부는 국민연금 이사장이 의결권 행사과정에서 정부나 CIO의 개입을 알지 못했고, 내부결정의 하자가 있더라도 이는 국민연금 내부의 법률관계로 해결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설사 대표권의 범위 내의 행위이더라도 그 행위가 제3자의 이익을 위한 권한 남용행위라면, 그 상대방이 이를 알았을 경우 행위의 효과를 부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국민연금 대표자인 이사장이 제3자인 이재용의 이익을 위해 의결권행사에 대한 대표권을 남용한 경우, 상대방인 삼성물산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의결권행사를 무효로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의사표시의 하자 문제가 아닌 대표권 남용행위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타당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삼성물산 합병 건은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로 엄중한 사안이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합병비율의 공정성에 대한 조작 등 중대한 범죄행위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사들의 배임적 요소를 부정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넷째, KCC 의결권 행사에 절차적 위법이 없다고 단정한 부분도 문제다. 재판부는 상법과 자본시장법 하에서 신주발행에 관한 규정과 법리가 주기주식 처분에 그대로 유추적용 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구 삼성물산의 자기주식 처분은 위법하지 않고, 따라서 KCC의 의결권 행사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신주발행에 관한 규정과 법리가 자기주식 처분에 유추적용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하급심 판례가 나뉘고 유추적용 된다는 학설도 많이 있으나, 재판부는 별다른 근거 없이 유추적용 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이 또한 합병목적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결과 자기주식의 처분이 경영상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정상적인 경영판단이었다는 전제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3. 이번 판결은 당초 작년 말에 선고될 예정이었으나,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형사재판 및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의 형사재판 등 삼성물산 합병 관련 형사법원의 판단을 지켜본 후 결론 내리기 위해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된 형사사건에서 피고인들에 대해 모두 유죄가 선고되었고, 특히 삼성 뇌물죄 사건에서 형사법원은 삼성물산 합병 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로 정치권에 청탁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삼성물산 합병 관련 형사재판이 합병무효소송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재판부는 합병 자체의 필요성을 전제로 예정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형사판결과 상충되는 부분에 대해 해명하듯 논리를 편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본 사건의 결론인 삼성물산 합병의 무효 여부를 떠나 재판부 인식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 매우 실망스러운 판결이라 할 수 있다. 끝.


논평 원문(HWP)